대성은 자신의 손목을 붙잡은 남자를 쳐다봤다. 며칠전부터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은근하게 대시를 해오던 선배였다. 요며칠 부쩍 적극적으로 들이대길래 슬쩍 피해다녔더니 기어코 쫒아와 열받은 표정으로 화를 냈다. 왜 피해다니냐,가 주된 내용이었지만 내포된 의미는 "니까짓게 뭔데 감히 나를 피하느냐"였다. 그런거 아니라고 부드럽게 웃으며 말하니 화가 풀렸는지 억세게 쥐었던 손목을 놓고 굳었던 표정을 풀었다.
"너도 참 보통이 아니구나?"
"무슨 말씀이신지..."
"다 알고 튕기는거잖아, 지금."
"튕기다니요. 전 그때 충분히 확실하게 거절했습니다?"
남자는 또한번 인상을 찌푸리며 눈 앞에서 실실 웃고 있는 얄미운 얼굴을 내려다봤다. 아니, 내가 고백을 하는데 감히 니까짓게 거절을 해? 자존심이 팍 상하고 영 면이 안섰다. 다시한번 찬찬히 그의 얼굴을 훑었다. 작은 눈에 커다란 코. 두껍한 입술. 피부는 또 칙칙하게 어둡다. 봐줄만한건 그나마 낭창한 허리와 빵빵한 엉덩이 정도? 엉덩이까지 내려갔던 시선을 들어올려 또다시 살폈다. 작지만 끝이 위로 휘어 어쩐지 퇴폐적인 분위기마저 나는 섹시한 눈매가 보인다. 귀여운 콧망울 밑으로 달달해보이는 도톰한 입술이 부드러운 호를 그리고 있다. 의외로 굉장히 몸이 좋은데 그에비해 늘씬한 허리라인이 또 예술이다. 탄탄하고 탱글탱글 촉감 좋아보이는 엉덩이와 탄력있는 허벅지까지....꿀꺽, 남자는 침을 크게 삼키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너니까 내가 이 정도 튕기는 건 이해해줄게. 한번은 더 해준다.
"그만 튕기고 나랑 사귀자. 어? 잘해줄게."
"거절할게요. 죄송합니다."
난처하게 웃으며 말하는 대성을 보고 남자는 묵혀뒀던 초조함을 여실히 드러내며 분노를 폭발시켰다.
"적당히 좀 해! 튕기는 것도 정도껏해야 예뻐보이는거야! 이 내가 사귀어 주겠다는데 뭐가 문젠데? 나정도씩이나 되는 남자가 너랑 사귀어 주겠다는데, 업어 모셔도 모자랄 판국에 거절을 해?!"
"선배...저 이미 사귀는 사람이 있어요."
남자가 속내를 들어내며 다그치자 대성이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사귀는 사람이 있다고. 남자는 잠깐 움찔했다. 그에게 사귀는 사람이 있을거라곤 전혀 염두에 둔 사항이 아니라 크게 당황했다. 강대성은 '당연히' 솔로 일 것이라 짐작하고 들이댄게 쪽팔렸다. 이리저리 바쁘게 머리를 굴리던 남자가 이판사판인지 되려 빽!! 소리쳤다.
"사귀는 사람 누구! 뭐 안봐도 뻔하다. 어디서 굴러먹던 개뼉다귀 같은 놈팽이겠지. 그런놈은 버리고 나로 갈아타는게 어때? 나는 걔보다 돈도 많고 일단은 월등히 잘생겼잖아?"
남자의 자기애가 듬뿍담긴 개소리를 묵묵히 듣고 있던 대성이 슬쩍 손목시계를 흘겨봤다. 남자는 너무나도 당당하게 나로 해! 걘 버리고 나랑 사귀자! 시끄럽게 외쳐댔다. 후 작게 한숨을 내쉰 대성이 잠깐 얼굴을 굳혔다가 이내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선배. 죄송하지만 제가 눈이 굉장히 높거든요."
뭐? 남자는 대성이 한 말을 바로 이해하지 못하고 멍청하게 되물었다. 대성은 미안한듯, 난처한듯한 표정으로 웃고 있었는데 어쩐지 그 미소에 심술이 가득해 보였다.
"제 눈에 선배는 오징어 같아서 사귀기 싫어요."
워낙 웃으면서 뱉는 말이라 남자는 잠깐동안 방금 자신이 들은 말이 욕인걸 인지하지 못하고 멍청하게 굳어있었다. 그러고는 곧 기가 막힌 표정으로 대성을 쳐다봤다.
"무..뭐라고?"
"아. 오해하지 마세요. 제가 워낙 눈이 높아서 그렇게 보이는 거예요. 남들 눈엔 나름 잘생겨보일껄요?"
시원하게 웃으며 말한 대성의 등 뒤로 까만 외제차 한대가 빠르게 다가오더니 길가에 아무렇게나 주차했다. 남자도 대성도 외제차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쾅!!! 거칠게 문을 닫으며 차에서 내리던 승현은 대성을 보더니 눈썹을 씰룩이고 매섭게 쏘아봤다.
"야!!! 왜 전화를 안 받아! 카톡은 또 왜 읽씹이야? 죽을래?"
고래고래 소리치는 승현을 못 본체 하고 대성은 다시 남자를 쳐다봤다. 예상치 못한 승현의 등장에 다소 놀랐듯한 모습이었다. 눈빛이 저 사람이 누군지 설명해주길 원하고 있었다.
"아, 제가 사귄다던 사람이예요. 저 얼굴 많이 따진다니까요."
대성의 대답에 남자가 다시 슬쩍 곁눈질로 승현을 살폈다. 그리고 금새 안색이 칙칙해지는 걸 보니, 저는 상대가 안된다는 것을 깨달은 모양이었다. 그 사이 승현은 대꾸 없는 대성에게 한차례 잔소리 비슷한 고함을 치더니 이쪽을 향해 빠른 보폭으로 다가왔다.
"그러니까 선배, 저한테 그만 찝쩍거리고 다른 사람 알아봐요. 네?"
웃으면서 하는 말 치고 굉장히 가시가 박혀있었다. 남자가 아무런 대꾸도 못하고 어버버 거리는 사이 대성이 휙 뒤돌아 자신에게 다가오는 승현을 지나쳐 외제차 쪽으로 걸어갔다. 굳은 표정으로 잠깐 이 쪽을 보다가 조수석으로 쏙 들어가버리는 모습이 영락없는 불여시였다.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닭인줄 알았는데 닭이 아니라 매였다. 사냥중이 아니라 자신이 사냥감이 되어 놀아난 것이다. 속은 기분에 대성이 탄 외제차를 멍하게 보고 있자 허, 저거 왜 지가 승질이야? 하는 말소리가 들렸다.
"성격 진짜 더럽다니까...누구 닮아 저 모양이야."
투덜대는 목소리에 비해 외제차를 바라보는 눈은 금방이라도 꿀이 떨어질 듯 달달했다. 승현이 곧 남자에게로 고개를 휙 돌렸다. 가까이서 본 승현은 이목구비가 단정했지만 짙은 눈썹이나 눈매가 사나워 보이는 인상이었다. 그의 위압감에 눌려 숨도 제대로 못 쉬고 멍청히 서 있는데 승현은 그런 남자를 관찰하듯 빤히 쳐다보았다.
"뭐야, 강대성한테 작업걸었다던 새끼가 너야?"
"아...예?"
"하여튼...시발 눈은 존나 높아요. 어딜 강대성을."
승현은 다시 한번 외제차 쪽으로 시선을 두더니 실실 웃어댔다. 갑자기 휙 고개를 돌려 정색하고 혼자 큰소리로 중얼거리는데 그 모습이 마치 공포영화의 한장면 같았다.
"강대성 저거 은근히 얼굴값하네? 딴 놈이 들이댄다고 전화를 안받질 않나, 카톡을 읽씹하질 않나. 뭐야, 이 새끼 이러다가 바람 피는거 아니야?"
남자는 승현의 독백들을 들으며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누가봐도 승현은 잘생긴 남자였다. 그냥 잘생긴 것도 아니다, 존나게 잘생긴 남자였다. 그런 승현이 대성을 두고 전전긍긍 하는 모습이 이해가 되질 않았다. 대성을 마치 불면 날아갈까, 쥐면 부러질까 하고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이 이상했다.
"야."
승현이 혼자만의 폭주를 멈췄는지 다소 태연한 표정으로 남자를 불렀다. 태연함을 넘어서 오만방자한 승자의 표정이었다.
"오늘은 강대성이 내 눈 앞에서 제대로 거절 했으니까 그냥 가는데."
승현이 남자의 어깨를 움켜잡았다. 손아귀 힘만으로 잡힌 어깨가 얼얼했다.
"담에 또 알짱거리는 거 보이면 그땐 진짜 뒤짐이다."
남자의 대답은 듣지도 않고 제 할 말만 한채 차로 당당하게 걸어갔다. 승현은 차에 타는 순간까지도 남자에게 위협적인 눈빛을 쏘아댔다. 차는 한참동안 가지 않고 시동만 켜진 채 서있었는데, 썬팅이 너무 강해서 내부가 보이질 않았다.